일의 주인공은 한국이다.

● 글로벌 신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무너지면서 세계 문화예술 지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특정 지역의 문화가 더 훌륭하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계급의식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특히 미술에 있어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현대미술을 절대적으로 지배해오던 서구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다. 새롭게 모양을 그려가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신지형도 속에서 비평의 기준 역시 다변화되고 있다. 서양의 미술과 문화는 현대적이고, 동양의 그것은 세련되지 못했다는 이분법이 잘못된 선입관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 이제 시장의 중심은 누가 더 역동적으로 새로운 시각예술을 생산하는가에 따라서 그 자리를 달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 즉 컨텍스트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낼만 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크리스털 구슬이 아닌 그것을 보고 결정을 내리는 마법사가 되어야 하고, 포커게임에 필요한 카드가 아닌 카드 플레이어가 되어 상황을 지배해야 한다는 말이다. 웹 2.0, 트위터, 페이스북 등 새로워진 미디어 테크놀로지 환경은 세상을 매우 좁게 만들어 버렸다. 지난 해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진 여파가 세계 곳곳으로 전달되는데 불과 3일도 걸리지 않았고, 데미안 허스트가 직접 스튜디오 작품을 소더비에 출품해 2000억 원을 벌었다는 논란의 기사가 한국에 전달되는데 반나절이 넘지 않았다. 빠른 정보, 정보의 평준화 앞에 세상은 점점 평평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정보의 보편화 혹은 민주화라고 부르며 마냥 신나라 한다면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그 평평해진 세상 속에서 지역문화와 예술은 점차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문화와 예술은 자본의 공습에 쉽게 변질되고 왜곡된다. 특히 이제 막 열매를 맺으려 하는 한국의 시각예술은 더욱 면역력이 부족하다. 평등한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히 선결되어야 한다.

2009년은 한국의 미술, 디자인, 건축의 해외진출이 어느 때보다 활발한 한 해였다. 미국, 영국, 중국, 싱가포르, 독일, 대만 등의 나라에서 날아온 스카우트들의 한국 작가를 잡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했다. 런던 사치갤러리와 필립스 듀 퓨리를 통해 박승모, 박선기, 장승효, 이림, 이이남, 추종완, 김아영 등의 작가가 국제적인 조명을 받았고, 전주의 무형문화재와 협업하여 한국의 전통가구를 세계적인 명품의 반열에 올린 건축가 김백선은 밀라노 전시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의 공공 조형물을 진행한 작가 안종연, 2008 서울 디자인 올림픽에서 이태리와 북유럽 디자이너의 찬사를 받은 권재민 등 지금 세계는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문맥 속에서 한국의 현대 미술, 디자인, 건축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어떤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펼쳐야 하는 걸까? 세상의 간격을 좁히고 있는 오픈 플랫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한국적이란 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전시 “코리아 투머로우”가 태어나게 된 배경이다.

이렇듯 “코리아 투머로우”는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 62 인의 역량을 한 공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전시이다.
한국적인 가치,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방법은 항상 일관되게 반복되었다. 스스로 정의하기보다는 항상 서구의 그체성(U.F.O Unidentified Face Object), 풍경(Tomorrowscape), 이미지(Image Collision 상상충돌), 중력(Strange Gravity 이상중력), 경계선(Between Borders 사이의 공간), 파편화(Stitched Landscape 풍경 꿰매다), 복합 공간(In-House House Project), 기능의 상상력(HomoARTEX) 등의 키워드에서 출발한 아홉 개의 방으로 꾸며진다. 미디어의 통합, 유비쿼터스 컬처, 빨라진 여행으로 한국은 다양한 문화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를 어떻게 정의할까?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의 문제가 일상의 질문이 되어버렸다. 지금 많은 작가들이 어떻게 미디어를 해석하고, 풍경을 이어붙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욕망,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상징 사이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현대 미술에서 한국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직은 현대적이라는 말과 한국적 가치는 모순어법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미술은 서구의 이론에 기반을 둔 역사를 가지고 있고, 반면 한국이라는 단어는 변방, 토속 등 전통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순어법의 가치를 일종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변종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고, 모순, 이율배반이라는 정의 역시 되짚고 가치 선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한국적인 가치,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방법은 항상 일관되게 반복되었다. 스스로 정의하기보다는 항상 서구의 그것과 비교하며 그 차이점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담론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채 문화이야기만 나오면 서구와 대결하고 그 대척점 속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서구와 비교해야만 하는 문화적 열등감, 문화 사대주의는 그렇게 쉽게 벗어 버릴 수 없는 족쇄처럼 오랜 세월 한국을 쫓아 다녔다. 한 국가의 문화 정체성은 집단적 기억의 축적이 만들어낸 잠재된 행동패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만큼 쉽게 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대결구도를 극복하고 스스로 정의할 다양한 액션을 취할 때이다. 2010년 11월 한국은 G20 세계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이제 한국도 국제무대의 파트너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평등한 소통, 혁신, 융화를 통해 역동성을 보여 가능성을 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스스로 우리의 현대 문화를 정의하고 다양한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새로운 질서는 새로운 리더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새로운 리더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것이다. ● 코리아 투머로우는 새로운 질서가 뿌리 내일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서로 다른 장르를 연결시켜주고, 한국의 것을 세계로 다리 놓아 주는 그런 오픈 플랫폼 말이다. 혈관에 피가 흘러야 숨을 쉬고 달려 갈 수 있듯이 가치는 소통을 통해서 형성된다. 다양한 장르의 시너지를 최고의 과제로 삼고 다 장르를 포용하는 코리아 투머로우의 열린 구조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한국에는 새로운 리더는 많은데 그들이 숨 쉴 수 있는 새로운 질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 이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