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의 재구성 – 지식공간의 탄생

이대형 (Founder&Director, Hzone/Korea Tomorrow)

2010년 “G 20 서울 정상회담”을 대비해 한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한 출판물 “Korean Beauty(안그라픽스/해외문화홍보원)”는 전통과 현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여백”, “차경”, “겹침”, “해학”, “멋”, “융합”이란 키워드로 설명하였다. 전형적인 연대기식 역사기술 방식을 버리고, 생경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편집방법을 고집한 결과물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 작품은 객관적으로 검증이 끝난 건가요?”, “그게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인가요?” 등의 질문이 나왔었다. 문화예술에 객관적인 잣대를 적용하려다 보니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예견된 모순을 경험하며 “한국적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적”이라는 단어와 함께 뇌리에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국의 자연이다. 바람과 소나무, 달빛과 반짝이는 시냇물, 완만한 산세…그러나 어떤 유려한 수식어와 논리를 가지고 묘사한다해도 뿌리깊게 자리내린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의 미학”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꾸밈이 없이 자연스럽고,’ ‘조용하며 평범하고,’ ‘여유있고 자유로운’ 등의 수 많은 수식어를 낳은 야나기는 형태를 중시하는 중국의 미학과, 색채를 중시하는 일본의 미학과 대비해, 한국의 미학을 자로 재지 않는 여유로움을 즐길 줄 아는 ‘곡선의 미학’으로 정의한다. 비록 그의 미학 이론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조선 백자를 보면서 단아함을, 조선 목가구를 보면서 소박한 자연스러움을 쉽게 느낄 수 있으니, 세밀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쓰여진 그의 이론은 꽤 유용하다. 뒤 이어 등장한 고유섭은 기존의 형식 미학을 보완하기 위해 ‘상상력’과 ‘구상력’을 시공간을 초월한 한국전통미학의 조형원리로 꼽으며 ‘무기교의 기교,’ ‘구수한 큰 맛,’과 ‘단아한 작은 맵시의 맛’등의 미적특징을 제시한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능력을 한국 미의 조형원리로 내세운 김원룡 역시 ‘간결,’ ‘평범,’ ‘율동’ 등의 미적 특질을 들며 한국전통예술에 대해 설명한다. 이처럼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의 시침은 아직은 “현대”가 아닌 “전통”에 더 밀착되어 있다.

이제 “한국적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넘어 지금 현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의 힘을 결정하는 요인들이 너무나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가 중요해 졌다. 이제 관찰의 단계에서 실시간 생산의 단계로 눈을 돌리지 않으면 글로벌 문화 경쟁에서 내 색깔을 만들기 쉽지 않다. 정치와 자본의 간섭이 심해진 파워게임으로부터 왜곡되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예술을 지켜내는 많은 요소들 중 가장 근원적인 키워드는 얼마나 “현대적”인가이다. 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단어가 실제로 베니스 비엔날레, 터너 프라이즈, 바젤 아트페어의 승자를 결정한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누가 생산하고, 어디에 유통시키는가가 매우 중요한 숙제로 남는다. 여기서 “현대적”이란 말은 결코 역사적 특정 시기를 말하거나, 특정 재료를 사용한 형식을 제안하거나, 특정 주제를 해석하는 방법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 모든 것들이 교차하는 “운동에너지”로 해석해야 한다. 고정된 프레임을 벗어 던지고, 비록 초점은 불안할지언정 끊임없이 이동하며 다각도로 다층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예술가들은 헐거워진 프레임을 단단히 조이는 대신 기꺼이 그것들을 해체해 밖으로 뛰쳐나오는 자유를 선택할 것이다. “현대적”이라는 말은 이렇듯 미래,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질서로 들어가는 문을 창조해 내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데 호의적이지 않다.  실제로 미술사가들의 수 많은 연구가 고대와 근대에 머물러 있을 뿐 현대미술사는 아직도 그림자 속에 움크리고 있는 신세이다. “현대적”이라는 단어와 “한국적”이라는 단어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짝처럼 어색해 보이는 이유도 이 같은 담론의 부재에서 비록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적”이란 말이 위험한 단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작품들의 대다수가 전통적인 가치와의 단절을 선택하고 미래로 향하는 동안, “한국적”이라는 말은 전통적인 범주 안에 갇혀 특정 주제와 형식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뿌리(전통)없는 열매(현대)가 무슨 맛이 있냐는 비판이나, 열매(현대)를 맺지 못하는 뿌리(전통)를 누가 상관하겠는가의 입씨름은 그만해야 한다. 창의적인 담론을 위해 논란과 비판, 심지어 비난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전시 “한국미의 재구성”은 한국미의 정체성을 특정 대상이나 색상, 형식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형식공간”, “정치공간”, “자본공간”, “지식공간”이란 4가지 단계의 카테고리를 통해 한국미를 재해석해 볼 수 있는 담론의 장을 제시한다. 이들 각각의 공간은 그 극명한 차이 때문에 상호보완 보다는 상호대립적인 성향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차이와 대립을 만들어내는 긴장감이야말로 한국 현대미술이 역동적으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먼저 “형식공간”은 196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의 상황을 의미한다. 자기형식 안에서의 비판을 통해서만 미술이 발전한다는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의 순혈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의 피로감에서 비롯된 반정치적 성향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현실을 회피, 외면할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래서 형상이 배제된 모노크롬, 앵포르멜, 비구상 조각 등의 작품들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다. 순수미술이란 타이틀로 자기형식 이외의 것들에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며 세상의 온갖 이물질을 걷어낸 정제된 형식만을 추구한 결과였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수한” 정신세계를 동양적인, 혹은 한국적인 철학과 연결시키려는 스테이트먼트가 만연하게 된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정치공간”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에 걸처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정치공간은 2가지 모습으로 펼쳐졌다. 하나는 80년대 민중미술이 한국식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과 당시 군사 정권의 정치상황에 대한 대립이었다면, 90년대 중반 이후의 정치공간은 개인의 사회적 관심들 예를 들어 테크놀로지, 섹스, 페미니즘, 하위문화, 도시문화, 미디어 등과의 소통과 융합을 통한 미술의 외연을 넓히는 역할이었다. 전자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억압 현상에 대한 사회적 분노 였다면 후자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비롯된 기존 가치, 윤리, 제도에 대한 반성은 현대미술의 방법론을 다야한 방향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현양식보다는 순수미술의 외적인 내용에 관한 다변화였다. 그리고 이는 다시 현대미술을 정의하는 외연을 확대시키는 순환구조를 보여주었다. 학교와 미술관 각종 공모전이 가지고 있었던 권력이 강요했던 미적 형식보다 개인의 관심사가 더 중요해 진 것이다.

“자본공간”은 2000년 이후 찾아온 미술시장의 전례없는 호황과 침체기를 모두를 경험하는 시기이다. 미술관과 갤러리 보다 옥션 하우스의 힘이 더 쎄진 시기이며, 미술의 외연을 넓히는 비평적 전시보다는 미술시장의 취향을 재빠르게 반영하는 가벼움이 전시장을 도배했고, 대학들은 이념과 철학 대신 시장과 자본에 대한 교육에 열을 올렸다. 저명한 평론가나 큐레이터의 비판적 코멘트 보다는 옥션 낙찰가가 일간지의 주된 기자거리가 되는 현실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자본이 미술의 관심과 반향을 지배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시장의 확대는 각 지자체의 각종 미술지원 레지던시와 국제미술제, 기업별 미술상, 그리고 새로 생긴 수 백여개의 신생 갤러리까지 작가를 찾아 나서는 기현상을 만들었다. 그 속에서 예술가들은 90년대 이후 발전시켜온 실험적 주제와 형식을 자본으로 환산해야 하는 시장의 압력을 받는다. 미술품이 순수한 창작물이 아닌 시장의 소유, 배분, 향유라는 시장 논리 속에서 왜곡된 의미화가 이루어지며, 시장의 편향된 취향은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 마저 빼앗아 갔다. 그러나 시장은 움직이는 것이고, 열기는 식기 마련이니 수 많은 이카루스가 학계, 비평계의 경고를 무시하고 추락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형식공간”, “정치공간”, “자본공간”은 한국현대미술이 학습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들 공간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외부의 것을 모방하거나, 정치권력 혹은 자본 아래 약자의 위치에 수동적으로 있었다. 그렇다면 예술이 주도해서 가치를 생산해내는 공간을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예술가, 큐레이터, 콜렉터, 비평가, 에디터, 문화정책가, 역사학자, 딜러, 경매사, 갤러리스트 등 미술계 전반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생태계를 “지식공간”이라고 부르자. 이들은 끊임없이 지식을 생산하고, 학습하고, 운영하고, 유통시키며 각자의 공간을 확장해 나가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지식공간”은 혼자가 아닌 팀으로 움직일 때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낼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도시공간, 건축, 미디어, 인터넷 인프라가 탄탄해졌고, 눈에 보이지 않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인지적,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 미학적, 제도적, 윤리적 범주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미술의 호황기와 침체기를 빠르게 학습한 콜렉터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예술가들은 이미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경계를 초월하는 경험에 익숙해졌다. 글로벌리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 사회 속에서 한국의 시각 예술이 차별화된 의미와, 기능 그리고 변화된 지위를 전세계가 경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는 한국현대미술이 “지식공간”을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단 의미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식은 권력이란 점이다. 그리고 지식은 수용자 보다는 생산자가, 더 나아가 그것이 소통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자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진다. 자 이제 한국현대미술이 어떤 지식공간을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 속에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과 미래의 모습이 숨어 있을 것이다.

Reconstruction of Korean Beauty – The Invention of Knowledge Space

LEE Daehyung (Founder&Director, Hzone/Korea Tomorrow)

To introduce the art and culture of Korea during the “2010 G 20 Seoul Summit” promotional period, the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KOCIS) published a book titled, “Korean Beauty (Ahn Graphics/KOCIS)”. The book crosses the boundaries between traditional and modern genres and uses key words such as “void,” “window landscape,” “overlap,” “humor,” “taste,” and “convergence” to describe the identity of Korean culture. Its use of new, as-yet-unproven method of juxtaposing different genres and spaces is quite different from a typical chronicle and historical editing method. In the meantime, some questions came across such as “Has this image been objectively selected?” “Is that a representational image of Korea?” These predictable contradictions were unavoidable as it attempted to explain or verify the art and culture with calculative measures.

Many words can describe the image of “Koreanness”, but ‘nature’ is the most suitable singular word. The wind, the pine tree, the moon, and the sparkling streams and the gentle terrains of the mountains… are some of signature features of Korea’s nature. However, no other refined word or modifier can be compared to the deeply rooted language of the “Aesthetics of Chosun”, once beautifully articulated by Yanagi Muneyoshi (1889-1961). The ontology of Yanagi articulates that which is “pure nature without imitation”, “serene and simple”, and “gentle and carefree”. Yanagi justifies Korean aesthetics as the ‘aesthetics of the curvy line’ that is different from the aesthetics of China, where form is emphasized, or the aesthetics of Japan, where color is emphasized. In cases of the white porcelain and wooden furniture from the Chosun Dynasty, a sense of elegant beauty and simplistic naturalism can easily be detected, respectively, even without having to master Yanagi’s philosophy. Henceforth, his dense and analytical observations may arguably be useful in making the aesthetic observations or evaluations richer. On the other hand, the principles of Ko YuSeop’s theory of Korean aesthetics center on the ideas of “imagination” and “conception” to overcome the limit of formalist aesthetics. His theory hints of a transcendent dynamism between space and time, and suggests aesthetic traits such as ‘technique without technique,’ ‘pleasant taste,’ and ‘elegant style’ as part of the principles of the traditional art of Korea. Whereas, Kim WonRyong argues that the harmony between the art of nature and the manmade is the backbone of the Korean art and depicts “conciseness,” “the ordinary,” and “rhythm” as exemplifying aesthetic features of traditional art of Korea. Thus, till this day, the grasp of “Korean identity” is still focused on “tradition” rather than the “contemporary.”

From here on, the sphere of “Korean Identity” should transcend from the past toward the present. The present time is significant as the elements that define art are reshaping its course fluidly and progressively with time. In order to be distinctive from the pool of cultural competition in today’s globalism, the art of practice needs to change from being observatory to being of real time productivity. It is such a challenge to keep the values of art that are not distorted from the abusive power of politics and capital. One of the striving features that still conceptualize the fundamental values of art is how “modernist” it is. This word may sound startlingly abstractive but it is the key that holds to the success of the Venice Biennale, the Turner Prize and Basel Art Fair. Thus, it is crucial to know how to interpret, who produces and where to distribute. Here, the word “modernist” is not tied to a certain period of the history nor is it strictly using certain types of mediums. Moreover, it does not require certain means to interpret particular themes, either. However, it should be understood as a source of energy that exchanges all the elements. Though the focus may seem unsteady at first, it should move away from a standardized framework and construct an image of various angels and layers. Artists would act toward artistic freedom rather than staying in one tiring framework. The core driving force of “modernist” is the power of progressiveness.

The reality, however, is that it is demanding and rather complex to define the contemporary art of Korea. In practice, ancient and modern art shines high with countless research data, whereas contemporary art shivers shyly in the shadows. “The lack of discourse between the past and the contemporary is the reason behind the discord between contemporaneity and Koreanness. The issue at hand is the realization of how dangerous the word Koreanness may sound with time. The majority of artwork that wears Koreanness as a signature departs strongly from the traits of the past and gears solely toward the path of the future. The word Koreanness is still framed within the range of tradition and is stuck within the boundaries of specific themes and conventional formalities. Imagine the fruit (the contemporary) without the root (the past) or vice versa. Either way sounds abortive. Their tug-of-war should be within the symbiotic relationship.”

We should welcome controversy or criticism for more creative discourses on this controversial relationship. The exhibition, “Reconstruction of Korean Beauty” focuses on four conceptual categories: “modernist space,” “political space,” “capital space” and “knowledge space.” Each one of the categories is a thesis where a mutual dialogue can be shared to reinterpret the idea of Korean beauty. The apparent division of the concepts may seem antagonistic rather than complementary but, when discussing the identity of Korean beauty, the concept, on the whole, avoids using a specific subject, shade of color, or format. The anticipating state that each space can create a sense of disparity or polarity is a conceptually exciting and motivating factor for dynamic and diverse discussions.

First, the “modernist space” indicates the time from the 1960s to the late 1980s. The Art Informel (or Tachism), Monochrome, non-figurative or non-representational artworks were some of the key interests of the artists from this period. The conceptual backbone for these artists was the semi-political disposition of Greenberg’s approach to Modernism, which argues that art can develop through the means (or the ideas) of exclusive criticism. Its political tendency was a result from the social exhaust that sprang from the racial sectarianism and the ideology of anti-communism of the time. The artists insisted on defining fine art as a refined form, completely pure of the worldly foreign substances or elements and entirely exclusive of their own forms of structure. Therefore, the spiritual language of the “modernist space” leads the argument to connect the intangible “pure” art to the philosophy of Asia and Korea.

Next, the “political space” was born as a reaction to the “modernist space.” It has two spatial dispositions that stretched out from the 1980s to the mid to late 1990s. First, the Minjung Misool was a representative art movement of the 1980s that reacted to Korean Modernism and was confrontational of the military regime of the time. In the mid 1990s and onward, the political space extended the individual’s social interests to areas such as the communication and harmony between art and technology, sex, feminism, subculture, urbanism (metropolis) and the media. If the first disposition represented the social outbursts from ideology and political suppression, the latter represented curiosity about the outside, the world, and as a reaction to the birth of the internet. The reflection on the existing values, ethics, and systems of Post Modernism led to a widening of the methodology of contemporary art. Moreover, it was about the diverse transformations of the exteriority of fine art rather than its methodology. In turn, it solidified the definition of contemporary art further. Thus, in terms of artistic practice, the basis of individual’s interests became more significant than the formative practice of many schools and institutions that performed their commanding power over various exhibition contests.

In addition, the “capital space” epitomizes the time of the unprecedented rise and fall of the art market after the year 2000. Many auction houses gained significant power and influence than museums or galleries. Such phenomena became apparent when exhibitions heavily showed a preference toward the art market and universities began to show enthusiasm on the teachings of market and capital as opposed to an education on ideology and philosophy. Furthermore, auction bids made news and headlines in the media and newspapers as analysis and essays by critics and curators lost their voices. The capital began to command the interests and direction of art from then and there. With the expansion of the market, many residency programs and international art fairs, and corporation awards and hundreds of newly opened galleries started to search for artists. In this jungle of strange phenomena, artists feel the pressure from the market to transform experimental themes and forms developed since the 1990s into sources of capital. Artworks become possessive emblems of the art market and lose the definition of purely creative products.

‘Modernist Space,’ ‘political space,’ and ‘capital Space’ are the three main factors that have substantial influence on contemporary Korean art. Contemporary Korean art has always been tied up to those systems only to remain at a passive level in presenting its creativity. To be more specific, due to the absence of the initiative, contemporary Korean art is considered as imitating what is already out there, or being always dependent on political authority and capital.

With this in mind, now is the time that we must face the substantial issue; whether the pure ‘realm of art’ itself can actively create its own value free from all the influence of those three factors. The issue has led me to see the need of a new space, which is ‘knowledge space.’ It is composed of only art experts such as artists, curators, collectors, art critics, editors, culture politicians, art historians, art dealers, auctioneers, and gallerists. Each expert in this space tends to expand the space on his own, because while one studies his field, he develops the idea further and this results in a production of new content. Within this cycle, ‘knowledge space’ will generate a synergy effect when the active communication with other fields is made. That is to say, ‘knowledge space’ is the space of constant evolving.

Korea has shown great development in the past few years both physically and morally, as social infrastructure such as urban planning, architecture, media, and Internet are highly established, and also spiritual categories including social, cultural, aesthetic, institutional, and moral attitudes are reached at a certain stage that can be sufficiently accepted internationally.

The Korean art field shows much development too. Now, many collectors are equipped with a keen eye for judging and evaluating a work of art after experiencing both the up-phase and recession of the art market. The working realm of artists also gets wider and wider, as artists from different genres and different background work together based on a wide range of their network. Globalism is so steeped into Korea, and I strongly believe this is another chance. That is, it is a chance for Korean art to enter the global market and appeal globally with Korea’s unique meaning, function and changed status. This is because contemporary Korean art is in a mature stage, and capable of creating the ‘knowledge space.’

Knowledge is clearly followed by authority. Given the fact that contemporary Korean art is ready for creating knowledge space, here comes another issue that we need to face. Think about what kind of knowledge space contemporary Korean art can create and how it will look like. The answer will show the potential of contemporary Korean art and suggests the direction it should fol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