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각의 영역확장

이대형 (수석 큐레이터, 창원조각비엔날레)

비유하자면 성벽과 성문이 사라진 상황이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인파를 견뎌야 하고, 외부의 간섭에 노출되고, 그리고 그것이 위엄있는 성곽이였는지 조차 망각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공조각은 이처럼 사람들의 움직임 한 가운데서 무방비 노출된 채 생존해야 하는 예술형태이다. 미술관이란 울타리 없이 현장에서 지역 커뮤니티와 소통하고, 참여와 상징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공공의 재원으로 설치되고, 유지되어야 하기에 작가의 상상력은 커뮤니티의 보편적 이해 속에서 때로는 제한되고 편집된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가 만들어낸 정체성보다 랜드마크, 모뉴먼트, 건축구조물, 문화적 상징물, 미학적 오브제 등 그것이 놓여진 문맥에 의해 사람들로부터 부여받은 정체성이 더 중요하게 유통된다. 그렇다고 공공조각을 도시재생이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대안으로만 바라보고 기능적 프레임 안에 그것의 정체성을 가두어서는 안된다.

지역성에 근간하면서도 조각적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창원조각비엔날레에 경쟁력있는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이 같은 딜레마에서 출발한다. 보편적 소통의 오브제인 공공조각과 큐레토리얼 차이를 실험해야 하는 비엔날레라는 이질적인 조합을 풀어야 한다. 기획전시 중심의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와 벵쿠버 조각 비엔날레와 달리 조각품이 야외에 영구설치되는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원칙은 작가들의 소재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제약은 작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재료를 찾는 대신 주어진 재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공방식을 연구하고, 돝섬과 한국의 근대사에 대한 학습을 이끌어 내며 보다 치열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제임스 홉킨스는 돝섬의 경관을 반영하는 개념적인 지구본을 제작했고, 미쉘 드 브로인은 한국 벽돌건축의 역사를 자신의 작품으로 응용했다. 제임스 앵거스는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강철주조 기법을 이용해 자연과의 대비를 유도했다. 반면 일본의 카즈야 모리타는 돔 형식의 벽돌건축구조물로 숲 속에 시민들을 위한 작은 명상공간을 만들어 냈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데이비드 브룩스의 작품은 거대한 트렉터를 땅 속에 묻어 자연과 문명, 환경과 경제논리,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 등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이들 작품들은 예술과 일상 사이의 지속적 관계성 구축을 예술철학의 주요한 과제로 생각했던 철학자 존 듀이[1] 의 철학처럼, 첫째 관객과의 창의적인 소통을 이끌어 내고, 둘째 영속적인 구조물로서 시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기 위한 목적을 공유했다. 지역 고유의 미술문화와 환경을 존중하면서도 국제적 네트워킹을 통해 문화적 헤게모니를 배양시킨다는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  필요 이상의 소통을 해야 했다. 권혜정, 손다위, 허은빈 큐레이터의 도움으로 수백여통의 이메일과 전화통화를 통해 한국에 와 본적 없는 작가들을 설득시키고, 교육시키고, 안심시키기를 반복했고, 수십 차례 반복된 이병호 조각가의 현장 답사를 통해 해외작가들의 사전 작업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소위원회와 대위원회를 통한 지역 시민 전문가들과의 소통과정을 통해 시민접근에 대비한 안전도와 조형적인 완성도를 점검했다.

1979년 에세이 “조각 영역의 확장”을 통해 로잘린 크라우스가  건축, 경관 등 비조각예술과 조각과의 경계가 현대미술에 있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하였지만, 30 여년이 흐른 뒤 여전히 “조각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시민들의 답변은 보수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해외작가들의 지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연구,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완성된 작업은 조각의 정의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스미슨의 1970년대 대지미술 그리고 건축적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리차드 세라의 1980년대 철판조각까지 조각의 외연 확장의 역사가 작은 돝섬에서 이루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런면에서 충분한 리서치가 선행되어야한다. 그래야만 관객, 재료, 그리고 자연환경 사이의 관계를 적절하게 작품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낸 다는 것은 그래서 조각이란 장르의 외연을 확장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구축과 다르지 않다. 그 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트렉터를 집어 넣는 설치작업 <숲속의 기계>을 출품한 데이비드 브룩스은 역사, 인프라 스트럭처, 미학, 재료,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까지 예견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을 통해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과 결과, 그것이 상징하는 문화적 고착상태, 그리고 그로부터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인지하고 이용하고 있는지 살핀다. 그의 해체적이고 심지어 파괴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실험적인 설치 조각작품은 물리적인 구축보다는 상호간섭, 상호작용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조각인가의 문제가 아닌, 그것이 시민들로 하여금 어떤 각성과 반응을 이끌 낼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루이스 설리반의 명언 “형식은 기능을 따른다”와 뉴욕 지하철 강철주물기둥 사이의 공통점은 모두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임스 앵거스는 근대건축의 한 축을 완성한 루이스 설리반의 철학과 여전히 견고하게 뉴욕 지하철을 지탱하고 있는 강철주물기둥 사이에서, 현대자본주의 그리고 그 낙천주의적 팽창이 남겨놓은 과잉 기계생산 시대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어떤 상징으로 다가오는가 묻는다. 컴퓨터 디자이너, 엔지니어, 수학자, 과학자와도 협업하고 있는 제임스 앵거스는 다양한 상징으로부터 추출한 아이디어를 강철주물 기법을 통해 물질화시킨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어쩌면 더 거대한 구조물의 일부분은 아닌지. 그런 면에서 나의 작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출되는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제임스 앵거스의 설명은 그의 재료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준다. 일정한 모듈을 이어 붙여 제작한 <파이프라인의 압축과 확장> 은 효율성을 강조한 모더니즘적 구조가 어떻게 유기적인 포스트모더니즘적 유연한 구조로 재탄생하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미쉘 드 브로인은 주어진 문맥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작가이다. 사람들의 간섭과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물을 만들면서 항상 그것이 이미 거기에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작품이 설치될 지역의 역사와 건축재료에 대해 공부하고, 사람들의 행동방식과 관심대상에 대한 연구를 놓치지 않는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오브제를 활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구조가 4차원적인 공간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어느덧 그의 재료는 신비주의적 아우라를 발하게 된다. 철학, 언어, 과학, 미술사, 심리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토대 위에 구축된 그의 작품은 물리적인 오브제와 비가시적 개념, 일상과 공적인 공간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하게 만든다. 이번에 출품한 <인터레이스>는 뫼비우스 띠를 연상시키는 순환계단과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적벽돌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순환하는 동양적 역사개념을 상징적으로 구조화 하였다.

제임스 홉킨스에게 있어 관객과 작품 사이의 관계설정은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작품을 인지하는 시각화가 어떤 과정과 판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반드시 이 관계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품작 <지구본>을 예로 들면, 작품의 타이틀과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지구본이라고 했지만 관객은 거울처럼 반짝이는 지구본 표면을 보면서 세계지도 대신 <지구본>이 놓인 돝섬의 주변환경과 관객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나무나 종이 표면 위에 지도를 그려 넣어 완성되는 전통적인 지구본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전통적인 지구본이 세계 속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개념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든다면, 제임스 홉킨스가 만든 지구본은 내가 위치하고 있는 환경과 풍경을 반사면을 통해 보여주며 주체와 문맥의 상호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의 위치와 관객의 시점 사이의 변화에서 비롯된 시각적인 환영은 반전을 요하는 제임스 홉킨스의 네러티브를 구성하는 주요한 모티브인 셈이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흙, 나무 등 쉽게 채집할 수 있는 재료를 중심으로 다양한 건축 기법들이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문명이 시작되면서 이런 자연친화적인 재료들은 구시대적이고, 원시적이라는 이유로 외면 받기 시작한다. 카즈야 모리타는 일본 교토를 근거지로 옛 선조들이 수 천년 동안 지켜왔던 전통적 기법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실천하고 있는 건축가이다. 작가는 지방색과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수천 년된 주변 건축물들을 보고 자라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지방의 토착 재료, 즉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과거의 전통 문화 유산을 되살리는 움직임은 오늘날 큰 도전이다. 카즈야 모리타 건축의 큰 특징은 전통과 현대의 소통에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재료와 기법으로 대량으로 만들어진 근대적 건축물들과 다르게, 지역에서 발생한 재료를 가지고 그 지역환경에 맞는 건축물을 만든다는 것이 어쩌면 21세기 건축의 대안일지 모른다. 과거의 지혜와 근대적 과학기술이 융합하고 또한 주변 환경과 소통하는 그런 건축물. 이번 창원조각비엔날레를 통해 카즈야 모리타의 건축팀은 작은 일본 전통 다실을 연상시키는 파빌리온 <벽돌더미>를 숲 속에 만들었다. 주목할 점은 주재료로 사용된 한국의 흑벽돌과 스페인의 돔구조 그리고 일본의 건축술까지 과거와 현재라는 수직적 소통을 넘어선 동양과 서양의 수평적 소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 5명의 해외 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접근과 주제의식을 가지고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그래서 생경하고 개념적으로 익숙치 않은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다. 1889년 파리 국제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1887년부터 1889년까지 3년 동안 당대의 건축, 예술, 과학의 합작이 만들어낸 에펠탑은 오늘날 프랑스 파리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 공공 조형물이 설치되었을 때, 파리의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대표적인 예술가들까지도 합세해서 흉물스런 공공조각이 등장했다면서 맹비난을 쏟아냈었다.[2]

이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예술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 문학의 역사, 기술의 역사와 항상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공공조각의 전통적인 정체성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그것의 영역확장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빛을 이용한 조각, 대지미술, 설치미술, 비디오, 인터넷, 그리고 심지어 사이버 정보 메세지 보드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표현수단의 다변화는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가능케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작가들이 그것들을 활용하고, 실험하고, 생산해낼 것이다. 그리고 작가들이 시도할 실험의 생경함에 익숙해지는 관객들의 반응 속도 또한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조각에 대한 정의는 항상 그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물리적인 오브제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게 만들고,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감상을 넘어선 접근을 의미한다)이 가능하며, 문맥에 맞는, 관객의 요구에 맞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사이즈와 색상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반드시 물질적인 오브제일 필요는 없다)까지도 조각의 정의에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1] Rudolf Arnheim, The Dynamics of Architectural Form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215.

[2] Roland Barthes, The Eiffel Tower and other Mythologies, tr. Richad Howard (Bel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3-18.

 

Expanding the Boundaries of Public Sculpture

LEE DaeHyung
(Chief Curator, Changwon Sculpture Biennale)

The ramparts have been torn down, front gates lay open, completely defenseless to the endless waves of shuffling footsteps and rude foreign intrusions. It is high time to face the sinking reality that may no longer recognize the glorious bastion the walls once held. Public sculpture is art that must survive the exposure and endure the complete vulnerability of its form. Without the exclosure of an art gallery, the sculpture interacts with the local community, communicating with it, participating in it, and at times embody it. By definition it is installed as public property and maintained as such, the sculptor’s imagination sometimes bound to and censored by the community’s generalized understanding. As a result, the genitor’s will for the sculpture can only come second to the public’s identification of it within the contexts of landmark, monumental, architectural structure, cultural icon, and object of aestheticism. Yet it is far too myopic to define public sculptures with  function-oriented frame of mind; an alternative means to urban restoration or a certain social function.

So then what would it mean to develop a strategy that can remain true to the region, avoid sculptural stereotypes and present a competitive identity for the Biennale? The question is where the Changwon Sculpture Biennale sets out from, and the disparity of public sculpture, the object of traditional communication and the biennale as the curatorial heterogeneity must be addressed. Unlike the temporary exhibitions of Münster Sculpture Project or Vancouver Sculpture Biennale, the grounds for Changwon Sculpture Biennale required the works to be installed permanently outdoors, a limiting factor to the artists’ choice of material. Ironically, it was this limitation that induced the sculptors to seek novel work processes rather than new materials. They sought new ways to work with existing materials, leading them to suffer the efforts of understanding the modern history of Korea and Dot Island. James Hopkins completed a conceptual globe mirroring the scenery of Dot Island, Michel de Broin applied the Korean history of brick building to her piece. James Angus used steel castings to symbolize modernism, striking a vivid contrast to its surrounding natural environment. Kazuya Morita from Japan lay a brick structure in the form of a dome, providing visitors with a place to meditate in the forest David Brooks’ work was the most controversial, a large tractor buried in the ground, encouraging people to ponder upon nature and civilization, environmental and economic systems, past and the future, and life and death.

Like John Dewey[1], the philosopher who emphasized the construction of ongoing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everyday life as an important aspect of art philosophy, the sculptures shared the purpose of first eliciting creative interaction with the viewer and secondly permeate into the local life as a permanent structure. Respecting indigenous culture surrounding arts while simultaneously cultivating cultural hegemony via international networking was no minor dilemma requiring an overindulgence of communicating. Curators KWON Hye-Jung, SON Dawi, and HUH Eunbin spared no effort in coordinating through hundreds upon hundreds of emails and phone calls in the process of persuading artists who had never been to Korea before, to brief them and reassure them dozens of times over. With sculptor LEE ByungHo’s made dozens of on-site surveys to the island to expedite the overseas artists’ preparations. A large board and a subcommittee facilitated a communication process with civilian experts from the region for safety inspection in regards to public access and formal stability.

The essay,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1979) by Rosalind Krauss made a prognosis on the future blurring of boundaries between architecture and landscape, non-sculptural arts and sculpture in modern art, yet three decades past today, public response to the inquiry of “what is sculpture” is yet conservative. In that sense, the diverse interpretations and research by foreign artists who come from many different cultural backgrounds, and their works consummated on that foundation of interpretation and research is perhaps what is necessary to precipitate the expansion of what is understood as sculpture. Who says a history of expanding sculptural definitions won’t unfold in Dot Island the way Robert Smithson’s land art in the ‘70s and Richard Serra’s steel plates reminiscent of architectural structure did in the 1980s?

Unfurling of such great history requires a precedence of adequate research in order to appropriately captur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viewer, materials, and the natural environment. Consequently, creating a culture is not dissimilar to extending the boundaries of genre, which in this case is sculptural art. That says soemthing about the level of difficulty involved. David Brooks dug a a pit and buried a tractor, naming it A Proverbial Machine in the Garden, and through it, displayed an insightful understanding of history, infrastructure, aesthetics, material, and prediction of ensuing responsibility. Brooks investigates the cause and effect of ecological crises, the cultural rootedness it represents, and how people perceive nature and exploit it. His seemingly deconstructivist and perhaps even destructive experiment in installation art deserves an interpretation beyond its physical structure; of mutual intervention and interaction. On that account, the key issues are not what the sculpture appears to be, but what response it can elicit and arouse from the viewer.

American architect Louis Sullivan’s widely quoted principle and phrase “form follows function” and the New York City Subway share more than a century of unfading presence. Between Sullivan’s monumental philosophy in modern architecture and the sturdy steel columns of the NYC Subway, James Angus throws light on remnants of a machine-driven industrial age left by unbridled pollyannaistic expansion, asking what they mean to us today as modern men. Collaborating with computer designers, engineers, and mathematicians, Angus’s steel casts give substance to eclectic ideas. His perspective on material is well summarized by his explanation that “What I am working on now, it could be a part of a larger structure, and if you think of it that way, perhaps what I am doing here is not so much creating than it is extracting.” Compressed Pipeline Expansion made from several connected modules, is a display of how efficiency-seeking modernist structure is reborn into an organic and flexible post-modernistic structure.

Michel de Broin works from a wide variety of materials depending on given context. Whenever de Broin creates public sculpture that induces interaction and involvement, considerable effort is put into make the structure feel like it has always been there. So it is vital that de Broin makes close study of the region’s history and construction materials of the structure, observe and study the subject people and their behavior patterns. De Broin takes advantage of commonly found objects, but structures them into 4-dimentional space, which in return causes his materials casting a mystical aura. Established on a foundation of humanities such as philosophy, linguistics, sciences, art history, and psychology, de Broin’s implores a reinterpret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hysical object and the metaphysical, the mundane and the public. Interlace is suggestive of a Mobius Strip, with its circulating stairwell. It was built using red bricks, the icon of modernization, structurally symbolizing the oriental concept of recurring history.

For James Hopkins, establishing a relationship between the viewer and the sculpture is an important starting point because it determines how the sculptor understands what processes and decisions are involved in the cognitive and visual recognition process. Take Globe for instance. The title and its intended message are obviously dissonant. Unlike what its name may suggest, the shiny reflective surface of the globe presents not a world map, but the surrounding environment of Dot Island and a reflection of the viewer. It is poles apart from the traditional form of the geographic sphere coated with a paper or wooden map. If the traditional globe conceived a conceptual idea of where one is on the planet, then Hopkins’ Globe encourages one to rethink the relationship between context and object, reflecting the environment where the viewer stands within. The visual phantasm witnessed in the interaction between the Globe and the onlooker is an important motif to the hook and twist that composes Hopkins’ narrative.

Ever since the dawn of civilization, many different construction methods were developed around dirt, wood, and other easily attainable materials. Modern civilization however, ostracized such environment friendly materials as antiquated and outdated. Kazuya Morita is an architect out of Kyoto Japan, committed to practicing traditional construction methods used by the ancestors for thousands of years. Growing up, the Japanese architect was inspired by the architecture in his city which had adhered to their heritage and local color.

It is a great challenge to bring back a cultural heritage through locally attainable materials. Morita’s architectural works are characterized by the communicative nature between modernity and tradition. Unlike modern structures built from materials and methods unparticular to any specific region of the world, building with materials attained locally just might be the alternative to 21st century architecture. Architecture that blends old wisdom with new technology, all the while communicating with the surrounding environment. Morita’s construction team built the Brick-Pod in the forest, a pavilion reminiscent of the Japanese tea house. Notable is that the Korean black adobe, Spanish domed structure and Japanese art of building, communication not only occurs vertically, but horizontally, between the Orient and the Occident.

 

The above 5 foreign sculptors each came to the Biennale with different approaches and themes. If there is any discord or unfamiliarity or uneasiness, it may only be fair to experience it. The construction of The Eiffel Tower took 3 years from 1887 to 1889, a collaborative effort of architecture, arts, and sciences, to celebrate the 1889 World’s Fair, and what is now the most iconic monument in Paris.[2] When the Eiffel Tower was erected, however, Parisians and even many eminent artists of the period criticized the hideous and ridiculous structure looming in the Paris skyscape.

Such irony found in history is sure to repeat itself. What is clear however, is that art has always shared its historical vein with philosophy, literary works and technology. In some ways, then, greater importance may be put on the expanding the definition of public sculpture, than on clinging on to traditional identity. Light sculpture, land art, installation art, video, Internet, and even the materials from information boards on cyberspace, the means to express and communicate are increasingly diversifying, and artists will continue to use those means, experiment, and give forth even more. The viewer’s response to the unfamiliar attempts made by the artists will become increasingly swift, and as a result, the definition of sculpture in the future will no longer signify the constant, physical object. It may not be too far down the road that the definition of sculpture will include something(does not need to be a physical object) that encourages viewers to reinterpret space, and approach from multiple perspectives (something beyond simple appreciation), and a customized experience per viewer request that may even control even size and color.

 

Translator: Sungmin “Abe” Chung

 


[1] Rudolf Arnheim, The Dynamics of Architectural Form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215.

[2] Roland Barthes, The Eiffel Tower and other Mythologies, tr. Richad Howard (Bel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