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명: Ordinary People
■ 참여작가: 박정혁
■ 전시일시: 2011년 8월 20일 - 9월 30일
■ 관람시간: 오전 11:00 - 오후 6:00
■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30-21 gallery absinthe

 

‘어제의 확신을 오늘 등져버린 자만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말레비치)

‘포르노그래피는 육체에 대한 정신의 투쟁 형식이다. 그 형식은 고로 무신론에 의해 결정된다. 왜냐하면 육체를 창조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과잉을 침묵으로 환원시키는 정신 속에 거주하는 과잉 언어가 더 이상 존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박정혁이 일차적으로 타파하려는 대상은 ‘부작위의 묵종’이다. 사람들이 갖는 수동적 편향성은 지배층 기획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배태시킨다. 이 무비판적 세상 따라가기가 또다시 소통 없는 일방적 허무의 욕망을 생산한다. 박정혁에 따르면 이 ‘욕망이라는 희극적 미끼야말로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원천적 힘’이라는 것이다. 진정 박정혁이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04년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을 어지럽혔던 ‘KMDC 프로젝트’의 현기증이었을 것이다. 성격이 이상하거나 볼품 없이 병약하고 나이든 유기견들을 콘테스트 형식으로 순위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유기견과 콘테스트의 유비관계는 인간사 모든 현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예컨대, 예술가와 비엔날레, 아니면 정치가와 대선이 대표적일 것이다. 세간의 희화화를 통해 혹닉(惑溺)을 타파시키려던 박정혁의 기도들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예상불허의 다양한 형식으로 번져나갔다. 특히나 빛났던 자기실존의 발현은 두말할 것 없이 2004년도 작품 ‘166cm’이다. 작가가 서른 즈음에 맞이했던 친조모의 마지막 죽음과의 사투를 채록한 영상이다. 회광반조(回光返照)의 불빛이랄까. 삶의 마지막을 앞둔 조모의 비명은 거셌다. 박정혁의 세간의 희화화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뼈를 깎는 고통임을 이 작품 하나가 전부 대변한다. 죽어가는 조모는 사람들의 최대가치를 상징한다. 절대적으로 객관화될 수 없는 바로 가족애 그것이다. 희로애락의 삶의 역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감정의 여운을 절치부심 객관화시켰던 이유는 가족이라는 혹닉을 타파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가치편향, 이치관념에 대한 투쟁선언이었다.

 

이진명 큐레이터